바바가 문서(바바케문서)

히라오의 바바 가문에서는 에도 시대의 고문서 50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고문서의 내용은, 검지장, 경계 다툼의 소송 문서, 고시서, 마을 규칙, 마을 그림 등으로, 에도 시대의 히라오 마을의 모습과 당시 농민의 생활을 알기 위한 귀중한 사료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고문서의 작성 연대는 간에이 3년(1626년)부터 원치 2년(1865년)까지의 239년으로, 이 중 간에이 3년의 '무주 츠즈키 군 시오카 쇼 히라오 마을의 수장'은 현재로서는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세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점의 고문서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기본 사료를 소개합니다. (참고로 바바 가문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의 근대 사료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무주 츠즈키군 시오카쇼 히라오촌의 수장(바바가 문서 1)
이것은 간에이 3년(1626년)에 작성된 것으로, 시내에 남아 있는 검지장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내용은 토지의 명소(소재지명), 위치(상田, 중田, 하田 등), 반별(토지 한 필지의 면적), 명청인(경작자 또는 경작권자) 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차출신모무라견메총백성연판일찰지사(마바가문서15)
에도 시대 중기쯤에는 비료 공급원을 찾기 위해 불법으로 타인의 산림에 들어가 낙엽이나 풀을 훔치는 사건이 빈발합니다. 이에 대해 마을 내부에서 마을 규칙이 제정되고 농민 상호 간의 감시 체제가 강화됩니다. 이 자료는 보령 14년(1764년)에 작성된 것으로, "주택이나 논밭에 인접한 수목과 낙엽은 물론이고, 산림이나 공동지의 수목과 낙엽에 이르기까지 마음대로 베어서는 안 된다"는 마을 규칙으로, 이를 위반할 경우 엄격한 처벌이 부과됩니다.
무주도주군 가타히라촌 고사와촌 여동군 히라오촌 야론의 일(바바가 문서 4)
특정 지역의 마을들이 산림이나 원야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 땅을 입회지라고 합니다. 농업 생산력이 상승함에 따라 그 이용도가 증가하고, 종종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이나기 마을에서도 입회지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자료에서 소개하는 히라오 마을과 인접한 카타히라 마을, 후사와 마을 간의 경계 논쟁입니다. 히라오 마을의 들판을 카타히라와 후사와 두 마을 주민이 입회 이용했다고 하여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평정소는 양측의 주장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여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내용은 "히라오 마을이 주장하는 새로운 경계 설정은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예로부터 존재해온 두 개의 무덤(입정무덤과 열세무덤)을 통과하는 선을 경계로 한다. 앞으로는 카타히라와 후사와 두 마을 주민은 히라오 마을의 들판에 일체 입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향 3년(1686년)에 작성된 이 자료는 표면에 경계선을 나타낸 그림, 뒷면에 판결 내용을 기록한 재허가서로, "재허가 그림"이라고 불립니다.
히라오 마을 그림 (바바 가문서 44・50)
히라오 마을 전체의 그림이 2점 남아 있습니다. 제작 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에도 시대에 속하는 자료로 보입니다. 논, 밭, 산림, 가옥, 사찰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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